위험수위 '여론재판'… 아니면 말고식 '마녀 사냥' 언제까지

입력 2017-11-10 17:50   수정 2017-11-11 16:34

경찰, 서해순 씨 무혐의 결론

'가족 살해범' 몰렸던 서해순 씨
무혐의로 결론났지만 사회적으로는 '매장' 당해
무고죄 입증도 쉽지 않아
채선당·240번 버스·'타진요'
여론에 편승한 미확인 보도
'황색 저널리즘'도 한몫



[ 성수영/구은서/황정환 기자 ] 희대의 악녀·가족 살인마 …. 가수 고(故) 김광석 씨의 부인 서해순 씨(52)는 인터넷상에서 남편과 딸을 죽인 ‘마녀’였다. MBC 기자 출신인 이상호 고발뉴스 대표가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일어나, 김광석’ 개봉을 앞둔 지난 8월 말 “김씨가 서씨에 의해 타살됐을 가능성이 있고 딸 서연양도 서씨가 죽였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터넷 여론의 ‘마녀사냥’은 시작됐다.

이 대표는 지난 9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서울중앙지검에 서연양 사망 사건을 재수사해 달라는 고발장을 냈다. 검찰 지휘를 받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수사에 착수했다. 두 달여간에 걸친 수사 끝에 경찰은 10일 서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서씨의 명예는 이미 갈기갈기 찢긴 뒤였다.

◆‘친딸 살해범’으로 몰린 서씨

경찰은 부검 결과와 주변인 진술 등을 종합해 서씨가 딸을 방치하고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김씨의 딸 서연양은 희귀 유전질환인 ‘가부키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독일과 미국 병원까지 찾아갔지만 치료법은 없었다. 근골격계 기형에다 정신지체가 동반되는 질환이어서 엄마 서씨는 매일 80㎞를 왕복해가며 딸의 등하교 수발을 들었다. 단 한 번도 지각하거나 준비물을 잊지 않았고 용모는 언제나 단정했다. 2007년 11월 중학교 1학년이던 서연양은 엄마에게 “절 이렇게 키워줘서 감사해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한 달 뒤 서연양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의료 전문가들은 가부키 증후군 환자가 급성 폐렴을 앓으면 급속도로 병세가 악화돼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서씨와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경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이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불복 의사를 내비쳤다. 이 대표는 “국민적 의혹에 비춰 미흡한 내용이 아닌가 아쉬움이 남는다”며 “(취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게시물에는 “검찰은 믿지 못해도 이상호 기자님의 마음은 믿습니다” “법이 진실을 가로막는 경우다” 등 지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빗나간 ‘황색 저널리즘’

여론에 편승해 ‘클릭 수’를 높이려는 ‘황색 저널리즘’도 이 같은 마녀사냥에 한몫했다. 서씨는 지난 9월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기 위해 한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했지만 되레 여론만 더욱 악화됐다.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평소의 두 배가 넘었다. 방송계 관계자들은 “방송에 익숙지 않은 일반인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져 당황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씨 변호인인 박훈 변호사는 “서씨가 분명 모든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가정불화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며 “이 대표를 비롯한 언론들이 엄격한 검증 없이 서씨를 연쇄 살인범으로 몬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영화 흥행을 위해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추측도 한다. 이 대표는 자신의 비공개 소환조사 일정을 스스로 언론에 알리면서까지 언론 보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 관계자는 “본인이 소환조사 일정을 직접 언론에 노출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다큐멘터리 영화 ‘일어나, 김광석’은 독립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1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서씨는 다음주 중 이 대표와 안 의원 등을 무고죄로 고소하겠다고 밝혔지만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서씨가 이 대표를 고소하더라도 무고죄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무고죄가 무혐의로 결론나더라도 이 대표는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계속되는 ‘여론 법정’의 ‘마녀사냥’

정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나기도 전에 특정 인물을 범법자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은 걸핏하면 반복되고 있다. 지난 9월 인터넷에는 서울 광진구를 지나던 240번 시내버스에서 아이 엄마가 “아이 혼자 내렸다”며 차를 세워달라고 요구했으나 버스기사가 매몰차게 거절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한 언론사가 양 당사자 입장을 제대로 취재하지 않고 해당 글의 내용을 단독 보도하면서 여론은 일제히 들끓었다. 진상 조사에 나선 서울시가 “버스기사의 위법 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한 뒤에야 여론이 진정됐다. 해당 버스기사는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녀사냥이 내게도 닥칠지는 몰랐다”며 “(자신을 비방하는 인터넷 댓글에)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하는 경향도 마녀사냥의 주된 특징이다. 2010년 인터넷 카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타진요)’는 가수 타블로가 학력을 위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가 졸업장 등을 제시했지만 학력위조 주장을 수년간 집요하게 반복했다. 3년 뒤 대법원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타진요 회원 3명에게 유죄를 확정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터넷 공론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인터넷 폭로와 고발은 기존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 탓도 있다”고 분석했다.

성수영/구은서/황정환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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